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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자기
    2023 금주일기 2023. 4. 11. 23:48

    오늘 이상하게 술 얘기를 많이 했다. 어제 햄 언니와 통화하며 월요일에 낮술마시잔 얘길해서 그런가. 점심에 오징어볶음 먹으며 반주 얘길 하고, 어제 구운 해물파전 얘길 하다 막걸리 얘길하고, 동료가 새로 생긴 맥주 무제한 펍 얘길 들려줬다. 아침부터 아픈 애를 병원에 데려갔다 출근하고 하루에 네 개의 회의를 하며 11시간을 보내고 나니 개처럼 술을 먹고 싶었다.
    실려오듯 지하철을 탔다. 인기곡 100을 돌려가며 들었다. 그 시간이 아까워 말해보카 앱을 열어 단어 50개 문제를 풀었다. 파이팅 해야지를 두 번 반복해 들었다.
    집에 오니 문앞엔 택배박스가 있었다. 송장을 떼고 물건을 풀어두고, 가방을 내려놓으니 아이가 먹고 싱크대에 올려둔 배달용기가 보인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용기는 씻어 재활용 비닐에 넣었다. 내일도 체육복을 입어야한다는 아이의 말에 빨래를 돌리고, 식탁 위에 남은 크로플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랬다. 건조기에 들어있던 빨래를 개며 성난 사람들을 틀었다. 나도 자꾸 화가 난다. 빨래를 다 개는 십분동안 스티븐은 나무에서 떨어지고 해고당한 다음 자살하려다 실패했고, 엘라는 아이에게 너와 나 둘만 존재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느쪽이지? 삶이 갑자기 지겨워질 때가 있다. 빨래를 다 개서 영상도 멈췄다.
    아이가 자기가 만든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며 기세등등한 얼굴로 재생버튼을 눌렀다. 개어둔 수건을 옮기며 편곡한 비행기를 들었다. 약은 먹었니, 세 번을 물었을 때야 아이는 간신히 알약을 삼켰다.
    철이 돌아와서 바톤터치하듯 침대로 향했다. 눕자, 누우면 다 나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침대에 수키가 토해둔 흔적이 보였다. 이제 겨우… 누우려고 했는데… 물티슈로 바닥과 이불을 벅벅 닦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잘못한 이는 아무도 없는데 모든 게 화가 났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지. 열시간 넘게 회사일을 하고도 겨우 얻는 게 이 남루함인가. 바쁘다며 지저분해진 집, 제멋대로 흩어진 짐, 내가 멈추면 모든 게 더 엉망이 되는 이 상황들이 다 짜증났다. 별것도 아닌데. 아는데. 지금 내가 피곤해서 그런 거라는 것도 아는데. 그냥.
    이불 빨래를 돌리고 누웠다. 자고 나면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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