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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2023 금주일기 2023. 4. 11. 23:48
오늘 이상하게 술 얘기를 많이 했다. 어제 햄 언니와 통화하며 월요일에 낮술마시잔 얘길해서 그런가. 점심에 오징어볶음 먹으며 반주 얘길 하고, 어제 구운 해물파전 얘길 하다 막걸리 얘길하고, 동료가 새로 생긴 맥주 무제한 펍 얘길 들려줬다. 아침부터 아픈 애를 병원에 데려갔다 출근하고 하루에 네 개의 회의를 하며 11시간을 보내고 나니 개처럼 술을 먹고 싶었다. 실려오듯 지하철을 탔다. 인기곡 100을 돌려가며 들었다. 그 시간이 아까워 말해보카 앱을 열어 단어 50개 문제를 풀었다. 파이팅 해야지를 두 번 반복해 들었다. 집에 오니 문앞엔 택배박스가 있었다. 송장을 떼고 물건을 풀어두고, 가방을 내려놓으니 아이가 먹고 싱크대에 올려둔 배달용기가 보인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용기는 씻어 재활용 비닐에 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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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2023 금주일기 2023. 3. 31. 13:14
가끔은 내 삶이 누덕누덕 기워진 낡은 이불같다는 생각을 한다. 일관성도 방향도 없이, 그저 눈앞에 무언가를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기워온 것 같은. 요즘 바쁘단 핑계로 집 청소를 못하고 있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어느 하나 같은 모양없이 때때로 필요에 의해 산 물건들이 어울리지 않은 채 같은 공간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계속 봐야 하니까. 바쁘지만 술을 마시지 않고 잘 지낸다. 어쩌다 한 번 마시는 날에도 술이 술을 마시는 일까진 일어나지 않는다. 적당히 마시고 가볍게 취하고 즐겁게 떠들다가 숙취없이 맞이하는 아침이 이제 낯설지 않다. 반작용으로 운동을 너무 해서 몸에 무리가 왔다. 무릎에 슬개건염, 발목에 아킬레스건염이 생겼다. 당분간 운동하지 말라는데, 요즘의 즐거움은 풋살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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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2023 금주일기 2023. 2. 4. 01:23
술과 담배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대체로 술을 마시면 담배가 피고 싶다. 담배를 필 때 술 생각이 나진 않는 걸 보면 이건 어쩌면 짝사랑. 얼마 전 담배를 끊겠다건 친구가 ‘딱 한 대’만 피겠다며 담배 한 갑을 샀고, 몇 대 피고 남은 걸 내게 버리고 갔다. 담배는 내가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과거형 관계이기에 주는대로 덥썩 받았다. 술과는 어떻게 다르냐면, 술은 엄청 참고 참는 느낌이고 이제 담배는 생각 자체가 안 난다. 오늘 한 대를 피웠다고 해서 내가 다시 흡연자의 루틴을 갖는 개 아니란 얘기다. 언제든 원하면 멈출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보니 오히려 편하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 이 들어갔지만. 여하튼 그래서 오랜만에 내 수중에 연초 한 갑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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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023 금주일기 2023. 2. 1. 23:50
1월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오늘이 되고 나니 '어느새 2월'이란 느낌 뿐이다. 1월에 뭐했지... 하루는 짧고, 일주일은 긴데, 또 한 달은 짧은 이상한 시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달이기도 했다. 연초 버프. 이제 또 한동안은 고만고만한 하루일 듯. 2월 둘째주면 아이가 졸업을 한다. 2주간의 공백동안 같이 여행이라도 가면 좋았을텐데, 내 일정도 그렇고 비행기표도 비싸서 맘을 접었다.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오늘 회사 동료들과 저녁을 먹는데, 한 사람이 계속 술을 먹자고 졸랐다. 결국 둘 정도는 막걸리를 마셨고, 나는 밥만. 이렇게 인간미 없는 사람인 줄 몰랐다며 놀리는데, 어쩐지 뿌듯했다. 그간 수없이 보여주었던 인간미...대신 이런 단호함을 보일 수 있다니! 생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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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쾅거려도2023 금주일기 2023. 1. 30. 00:18
오늘로 3회차 관람. 해외에 떠나있다가 돌아온 친한 언니 환영식이었는데, 언니가 영화를 같이 보고 싶다고 해서 슬램덩크를 추천했다. 여기저기서 모여야 하는 사람들의 사정으로 만남의 장소는 종로, 영화관은 피카디리가 되었다. 먼저 밥부터 먹으려고 했더니 아는 음식점이 없어서 검색하다 발견한 인도음식점이 갔는데 마치 현지에 와있는 듯한 바이브 덕에 인도체험의 즐거움이 있었다. 몹시 추운 인도이긴 했지만… 3번 봐도 영화는 좋았다.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여전히 또 울고. 진심을 다할 수 있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부럽고, 또 자극이 된다. 그게 설령 환상이라는 걸 알아도 말이다. ‘심장이 쿵쾅거려도 있는 힘껏 여유를 부리는’ 그 모습을 닮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늘 불안하고, 걱정도 많은 나지만- 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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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2023 금주일기 2023. 1. 28. 01:48
오늘은 이번 주의 술데이. 일 년 간 온라인으로만 만났던 친구들의 오프라인 모임이다. 온라인으로 만난 건 일년이지만 각각의 사람들과의 인연은 20년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다. 모임을 선두한 b는 제주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인데, 어느날 자기 주변인들에게 들었던 알 수 없는 화를 풀 방법을 고심하다 우리를 모았다. 같이 책을 읽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우린 조금은 설렁한 마음으로 일 년을 모였다. 초반엔 책을 열심히 읽었고 후반엔 그냥 만나는 것도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오래 만난 이들의 구력은 무시할 수 없었고 어제까지 만난 사람들인양 몇시간씩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사는 공간이 먼 탓에 온라인으로만 모이다가 명절 즈음 서울 근방으로 온 사람들 덕에 오프라인 미팅. 어떤 시절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주..